몇 년 전, 저는 저의 외할아버지께서 1957년부터 1961년까지 한국에 거주하며 촬영하신 300점의 35mm 필름 슬라이드를 물려받았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에 이 사진 유품들은 제게 외할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몇 안 되는 물건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진들을 받았을 때 저는 한국에 살고 있었고, 외할아버지의 행적을 따라가보고자 외할아버지가 사진을 찍었던 장소들을 직접 찾아가 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사진은 ‘기록’일 뿐만 아니라 ‘기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기억들을 되짚어가며 외할아버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은 제 외할머니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는데, 이 사진들이 외할머니가 태어나서 스물 다섯이 될 때까지 생활하던 곳에서 촬영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¼ 한국계 혼혈로서 두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저에게 두 분의 역사를 알아가는 일은 자연스럽게 저의 정체성을 탐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외할아버지의 사진들을 한국에 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오래된 컬러 인화 사진들이 오히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쉽게 실견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나아가 당시에 찍힌 많은 사진들은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미군들이 촬영한 것이며 대부분 아직까지 미국에 보관되어 있고, 공개되어 있는 경우에도 영어로만 표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접근성의 한계는 물리적·언어적 단절과 함께 문화적인 단절을 야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단절을 제 개인적인 삶 안에서도 마주하고 연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더 잘 인지할 수 있습니다. 외할아버지의 사진들을 통해 제 삶에서 느낀 단절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 처럼, 다른 누군가에게도 아카이브의 사진들이 ‘단절’을 ‘연결’ 시켜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만이 이러한 사진들을 제공하고 공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사진들이 수집되어 한국으로 보내지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아카이브를 통해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제가 한국 사회에 약소하게나마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4년 간 거주하며 정착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지금은 미국에 돌아왔지만, 한국과 작별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이 아카이브를 통해 여전히 저의 일부인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며 사회에 크고작은 기여를 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